니세코 유나이티드
2017년 3월, 일본 홋카이도의 ‘니세코’로 스노보드 원정을 떠났다.
스노보드를 타기 시작한 지 겨우 2년밖에 안 됐던 꼬꼬마 보더가 겁도 없이 떠났던 일본 보드원정기.
보드를 잘 타든 못 타든 상관없이 누구나 갈 수 있고 즐길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나의 보드원정기.
뒤늦은 이야기이지만 올해 다시 한번 더 니세코 원정을 준비하며 옛날 사진을 뒤적뒤적. 오랜 추억 여행을 떠나봤다.
너무 오래전이라 누가 얘기를 꺼냈는지 어떻게 마음이 맞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회사 스노보드 동호회에서 마음이 맞았던 다섯 명이 함께 일본 원정을 떠나기로 했다.
다들 처음이라 설렜던 마음과 더불어 첫 해외원정이라 단단히 준비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한 6개월 전부터 스키장을 알아보고 비행기표를 끊고 했던 것 같다.
한국에서의 시즌을 접고 여행 떠나기 며칠 전 일행 한 명 집에 모여서 두 개의 원정백에 장비도 다 나눠 담고 짐 분배까지 마쳤다.
다행히 보더 5명이다 보니 바인딩 분해도 간편해서 5명의 장비가 두 개의 원정백 안에 + 캐리어 안에 무사히 다 담긴 듯하다. 내 기억에 내가 누군가의 바인딩도 내 캐리어에 넣고 갔었다.
홋카이도 신치토세 공항에 도착하면 빼먹을 수 없는 도라에몽과의 인증샷 한 장.
니세코, 루스츠로 가는 스키 버스는 보통 국내선 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국내선 쪽으로 이동해야 한다.
국내선 청사 쪽에는 식당가도 많이 있어 점심 식사를 하고 나면 슬슬 버스탈 시간이 다가온다.
약 3시간 여를 달려 도착한 니세코 그랜드히라후 웰컴 센터.
오는 길에 보이는 어마어마하게 쌓인 눈들이 눈의 고장 홋카이도에 왔구나- 실감이 난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주차장에서 바로 보이는 요테이산.
요테이산의 어마어마한 광경이 그 당시에 너무 충격적이었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
사실 그 당시에 일로 너무 바빴어서 원정준비를 일행들이 거의 다 하느라 니세코, 루스츠, 키로로 등 어디 스키장이 좋을지 알아보고 고민하는 일을 모두 다 일행이 해주었기 때문에 니세코 스키장이 얼마나 큰 규모인지 아무 정보 없이 와서 주차장에서부터 어마어마한 위용을 뽐내던 요테이산이 그렇게도 멋져 보였다.
호텔에 짐을 풀고 바로 코 앞에 보이는 스키장을 보며 설레는 마음으로 찍었던 사진 한 장.
우리가 머물렀던 숙소는 그랜드히라후 스키장 바로 코 앞에 위치한 ‘호텔 니세코 알펜’.
5명이 아예 한 방에 머물 수 있게 8인 다다미 방을 골랐는데 거의 1박에 80만 원쯤 했던 것 같다.
방값이 진짜 비싸다 싶었는데 위치를 보니 이해가 갔던 곳.
호텔 문 밖에 나서자마자 스키장까지 5초 컷 & 스키장 슬롭이 보이던 노천탕. 결과적으로 대만족이었다.
다섯 명이 얼마나 설레고 신났으면 방에서 이런 사진도 찍었다.
다다미 방은 그냥 유스호스텔 마냥 아무것도 없이 그냥 맨바닥에 침구와 테이블 하나 정도 놓인 곳이었는데 거의 스무 명도 잘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넓었다.
대망의 첫날.
스키장이라고는 웰팍 말고는 용평 정도밖에 가본 적 없는 우물 안 개구리가 처음 해외 스키장을 밟아본 날이다.
니세코 해외원정에서 제일 충격적이었던 건 바로, 안전바와 발 받침대가 없는 리프트.
2인 리프트도 처음이었는데 아무런 안전바도 없이 그냥 무슨 벤치에 앉은 거 마냥 앉아 가야 한다.
떨어질 일이야 없겠지만서도 굉장히 무서웠다.
안전바도 없는데 발 받침대가 없는 건 보더한테는 정말 쥐약이었다.
우리나라처럼 보드를 안고 타는 건 말도 안 되고 무조건 발에 착용한 상태로 타야 하는데
보드 무게를 온전히 버텨내야 하는 게 생각보다 무릎이 아파서 4명이서 타는 리프트에선 서로서로 옆 사람 보드를 받쳐주곤 했다.
그럼에도 옆으로 보이는 풍경은 넘나 멋있는 것.
정말 광활하다.
우리나라처럼 인공눈을 뿌려 슬롭을 만들고 펜스로 막아놓는 그런 스키장이 아니라,
온 산 전체에 눈이 내려 산 전체가 스키장이라 정설 된 슬롭에서 타다가도 나무 사이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고
어느 슬롭에서도 사람이 복작복작하지 않아 사람을 피하며 탈 일이 전혀 없었다. 정말 좋았던 점.
니세코 스키장에서는 어디서도 요테이산이 정말 잘 보였다.
처음 보는 남의 나라 산이 뭐 이리 멋있고 마음에 들었는지 인증샷을 엄청 찍고 왔다.
빼먹을 수 없는 인증 샷. 사진을 보니 거의 한 시간에 한 번씩 찍어댔던 것 같다.
어딘가 경사가 엄청 심한 곳이었는데 요테이산의 경치가 너무 멋있어서 (계속 보면서도 계속 멋있었다)
뒤에 보이는 요테이산이랑 사진을 찍고 싶어 보드를 돌려 뒤를 보고 앉고 싶었으나 보드조차 뒤집지 못했던 2년 차 초보보더.
이건 사실 초보의 문제는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결국 돌려앉기를 포기하고 그냥 앉아서 사진 한 장.
지나가는 사람이 없다 보니 사진 부탁도 못하고 한 명이 희생해서 네 명을 찍어줬던 사진.
경사를 보면 거의 최상급자 코스였던 것 같다. 낙엽을 그렇게 많이 하고 왔던 니세코. 생각보다 상급코스가 많아서 거의 절반 이상 낙엽으로 내려왔던 것 같다.
물론 아래쪽에는 거의 평지이다 싶은 초보자 코스도 있지만 초보자 코스에서 놀려고 온 해외원정은 아니니까?! 낙엽으로 내려오더라도 마냥 즐거웠던 첫 해외원정이었다.
아무도 안 밟은 신설 눈이다 싶어 들어갔다 하면 경사가 없는 곳이라 꼭 이렇게 중간에 멈춰버려서 한참을 허우적거리며 진 빠지기도 하고.
나 따라 들어왔다가 같이 고립되어 버리던 일행들. 그럼 또 그냥 그 자리에서 보드 벗어던지고 사진 찍기 삼매경이었다.
펜스도 없다 보니 슬롭의 경계도 없고, 아무 데서나 보드 타다가도 멈춰서 사진을 찍어도 누구에게도 방해되지 않고 제재도 없다.
리프트에서 근처 리프트로 이동할 때는 그냥 이렇게 보드를 썰매 삼아 타고 내려가기도 하고.
낙엽만큼 썰매도 여기저기서 많이 탔다.
경사가 진짜 심해서 바인딩을 채결하기도 전에 앉은 채로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지던 곳도 있었는데,
그런 데서는 그냥 장비를 동생한테 맡기고 등카빙으로 내려오기도 했다. 다양한 재미가 있던 곳.
아무런 제재가 없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골짜기 같이 정말 위험한 곳에만 헬기를 띄우게 되면 얼마라는 등의 경고 메시지가 붙어있는데
그 외에는 트리런을 하든 썰매를 타든 개인의 자유에 맡기는 곳이다.
하나조노로 넘어가서 밥을 먹었던가. 슬롭에 사람이 그렇게 없더니 다 여기 있었나 싶을 정도로 꽤 많은 사람이 있었다.
생각보다 서양인들이 정말 많아서 놀라웠던 기억.
한국사람들은 타면서 휘팍에서 온 무리 한 번 마주쳤다. 하나조노에서 트리런 하기 좋은 초보 코스를 알려주었던 고마운 사람들.
밥 먹고 나오니 눈발이 조금씩 날리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눈이 왔다 그쳤다 하기 때문에 변색렌즈가 아니라면 주간용과 야간용 렌즈 두 개를 다 가지고 나가는 편이 좋다.
눈이 올 때 말고도 가끔씩 이렇게 눈보라 바람이 휘몰아치던 니세코.
눈이 올 때의 풍경은 그저 설원이다.
니세코에 왔으니 초보여도 트리런은 해보겠다고 나무 사이로 들어가 봤는데..
엇. 이거 생각보다 너무 빽빽한데요.
신설이 오지 않는 한 웬만한 곳은 이미 다들 지나간 자국이 깊게 나있어서 그대로 따라가기만 해도 되지만
고수들이 잽싸게 턴 해서 지나간 자리를 2년 차 꼬꼬마가 제대로 따라갈 리 만무하다.
결국 나무에 어깨를 부딪히고 말았는데 하필이면 시즌 중에 부상을 당했던 왼쪽 어깨를 부딪혔다.
시즌 중에 미니킥에서 겁 없이 깔짝 거리다가 상완골 골두가 골절됐고 한 달 동안 팔걸이를 하다가 팔걸이 풀자마자 갔던 원정이었는데,
니세코 가기 전 봤던 후기에서 어떤 사람은 트리런 하다가 무릎을 내주었다는데 혹시나 했던 우려가 현실이 됐다. 어깨 부상으로 다음날 아침 오전 보딩을 포기하고 온천과 사우나에서 한참을 지지고 났더니 다시 한결 움직임이 편해졌다.
그다음 날 오전에 다른 일행들끼리 니세코 정상에 다녀왔다는 게 함정.
다음날 오전은 온천욕으로 보내고 오후가 돼서 다시금 그 정상 근처까지 올랐더니 역시나 높은 곳에 오르니 풍경이 남다르다.
니세코 정상까지는 리프트가 운행하지 않고, 어느 정도까지 리프트를 타고 올라간 뒤 정상까지는 장비를 짊어지고 등산해야 한다.
정상까지는 못 갔지만 경치는 충분히 멋졌다.
문제는 정상 가까이 갈수록 심해지는 경사인데…
니세코에서 가장 무서웠던 경사였다.
당시의 기억이 생생한데 정말 ‘나더러 여기서 어떻게 턴을 돌리라는 거지…??’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스키장 경사가 사진으로 담기기가 쉽지 않은데 사진으로도 충분히 느껴지는 급경사.
심지어 비압설 구간이라 정설 된 슬롭에서만 타던 꼬꼬마에겐 정말이지 최고난이도 구간이었다.
그리고 사진 한 귀퉁이에 보이는 1인리프트.
위에서 언급했던 안전바 없는 2인 리프트는 양반이었다. 더 위로 올라가려니 마치 국자로 떠가는 듯한 1인 리프트를 타야 했다. 2인 리프트에도 없는 안전바가 1인 리프트에 있을 리 만무했다.
어디 그뿐인가. 리프트 승/하차장에서 속도를 줄여주는 우리나라는 정말 너무도 친절한 스키장이다.
승차장에서는 채가듯 태워가고 하차장에선 내던져지는 듯한 속도에 정말이지 여러모로 문화충격을 많이 받았던 니세코.
둘째 날에도 놀러 갔던 하나조노.
니세코 스키장은 그랜드히라후 & 하나조노, 니세코빌리지, 안누푸리 스키장을 통합해서 니세코 유나이티드라고 하는데 우리는 그랜드히라후와 하나조노 지역에서만 보드를 탔다.
전산 리프트를 구매하면 모든 스키장을 다 넘나들 수 있는데 우리처럼 4박 5일 일정으로 오면 첫날과 마지막 날은 이동하느라 보딩은 불가하고 3일 정도 보딩하는 데는 그랜드히라후와 하노조노만으로 충분했다.
하나조노 구역에 있던 쉼터 겸 카페.
벤치는 보드 판때기로 만들어 놓는 센스.
삼일째 되는 날에는 밤새 눈이 내렸다.
신설을 밟으려니 자꾸 경사 없는 곳으로 빠져들어서 허우적 대느라 체력을 다 소진하고, 트리런을 가자니 초보에겐 너무 고난이도여서
일반 슬롭에서도 파우더 라이딩을 했으면… 했는데 마지막날 소원이 이루어졌다.
다만 아직 날이 흐린 탓에 어디가 어딘지 모르고 들어가서 설면도 제대로 보이지도 않은 채로 타다가 뒷쩍하고 보니 상급 모글 슬로프.
뽀송뽀송한 자연설에 넘어져도 아프지도 않은 게 정말 푹신하다. 넘어져도 그저 즐거운 니세코다.
스키장에 쌓인 눈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스키장이다 싶었던 니세코.
짧은 며칠이었지만 정말로 행복하다 싶은 순간들이었다.
슬롭의 경계 없이 원하는 대로 마음껏 나무 사이사이와 정설 된 사면을 넘나들며 보딩을 즐길 수 있는 곳.
낮에는 파우더 보딩을 밤에는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곳.
단 한 가지 단점이라면, 자연설로 뒤덮인 드넓은 스키장을 다녀오고 나니 우리나라 스키장은 모두 다 웅플인가 싶을 정도로 내 베이스에 실망감이 생겼다는 점?
일본 원정 다녀오고 나면 우리나라 스키장에서는 별로 타고 싶지 않아 지니 시즌 중반보다는 시즌 끝나고 3월에 다녀오시길 추천드린다.
올해 6년 만에 다시 니세코로, 이번엔 보드가 아닌 스키 원정을 떠나는데 사진을 보니 다시금 두근거린다.
올해도 행복한 스키 원정이 되길! 😆
⬇️ 니세코 두번째 원정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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